부모가 자식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해도 좋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
아들들아, 너희는 혹시 부모가 아이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자주 하는 것이 좋은지, 아니면 가능한 한 하지 않는 것이 좋은지 생각해본 적이 있니?
언젠가 너희도 부모가 되었을 때 이 질문 앞에 서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빠가 너희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미리 글로 적어본다.
- 아들들에게 보내는 글
나는 오랫동안 ‘미안하다’는 말을 쉽게 꺼내지 못했던 것 같다. 부모의 사과가 자칫 아이들에게 약점으로 비쳐질까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자주 미안하다고 말하면 아이들이 그 마음을 이용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고, 반대로 너무 아껴서 아이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는 않을까 고민도 많았단다.
너희를 키우면서 나는 이 두 가지 사이에서 오랫동안 갈등했던 것 같다.
- 큰아들에게
돌이켜보면 너희가 어릴 때 나는 오히려 사과를 너무 아꼈던 것 같다.
큰아들, 네가 친구의 장난감을 망가뜨렸다고 친구의 엄마가 집까지 찾아왔던 날이 있었다. 그때 너는 울먹이며 "아빠, 정말 내가 그런 게 아니야"라고 간절히 말했지만, 나는 네 이야기는 들어보지도 않고 너를 야단쳤다. 지금 생각하면 그 순간 너에게 집중하고, 나의 실수에 대하여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말했어야 했다. 내가 그때 했어야 하는 건, 내 실수를 인정하며 너의 억울했던 마음을 헤아리는 진심 어린 사과였는데, 나는 부모라는 권위만 생각하며 네 마음을 제대로 보듬어주지 못했다.

- 작은아들에게
작은아들, 네가 식사시간에 천천히 밥을 먹는다고 화를 내고 소리쳤던 기억도 여전히 내 마음을 무겁게 짓누른다. ‘부모는 엄하고 강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너의 여린 마음을 충분히 배려하지 못했다.
장난처럼 말한 ‘주워 온 자식’이라는 농담도, 너에게는 크나큰 상처가 되었을 것이다. 네가 그 말을 진심으로 믿고, 어느 날 나를 향해 "아저씨"라고 부르던 순간, 나는 그제서야 네가 얼마나 깊은 상처를 받았는지 알게 되었다. 그런데도 그때 나는 즉시 미안하다고 사과하지 않았다.
너의 마음에 생긴 상처를 제대로 보듬어주지 못했고, 내가 잘못했다는 것을 인정하면 부모로서의 권위가 떨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네 작은 가슴에 얼마나 큰 상처가 남았을지 생각하지 못한 것이 너무 미안하고 후회스럽다.

- 뒤늦은 사과, 뜻밖의 반응들
이제 너희가 성인이 되고 나서야 아빠가 깨닫게 된 게 있다. 부모가 자녀에게 미안하다고 말해야 하는 순간과, 그렇지 않은 순간이 있다는 거다. 그래서 너희가 성인이 되었을 때 용기를 내어 그동안의 잘못을 진심으로 사과했다.
너희의 반응은 크게 드러나진 않았지만, 그나마 아빠를 이해해 주는 듯 보였다.
사실 아빠는 어릴 때 너희를 체벌한 것이 너무 마음에 걸려서 조심스럽게 사과했는데, 큰아들이 오히려 "저는 맞은 기억이 거의 없어요"라고 말해서 깜짝 놀랐다.
또 어떤 때는 내가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일을 가지고 작은아들이 "그때 왜 그러셨어요?" 하고 물어보기도 했었지. 그때마다 솔직히 잘 기억나진 않지만, 내 행동에 진심으로 미안함을 전했다. 그렇게 오랜 기억을 꺼내 사과할 때마다 너희는 "전혀 괜찮아요" 하며 웃어주기도 했고, 때로는 별다른 말 없이 조용히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런 반응을 보며 아빠는 고마움과 동시에 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단다.
- 사과 이후 달라진 점들
너희에게 뒤늦게나마 미안함을 표현한 후, 아빠 스스로도 조금씩 변해가는 것을 느꼈다. 좀 더 너그러워지려고 노력하고, 너희의 이야기를 할 때는 말 한마디에도 신중해졌다. 예전보다 더 참고 기다려주는 법을 배웠다. 결국 진심 어린 사과는 아이뿐만 아니라 부모 자신까지 성장시키고 변화시킨다는 걸 깨닫게 된 거다.

- 부모가 미안하다고 말해야 하는 순간
부모가 아이에게 미안하다고 반드시 말해야 할 때는, 부모의 실수나 잘못된 판단으로 아이가 마음의 상처를 입었을 때다. 예를 들어, 아빠가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 너희에게 큰소리를 치거나, 약속을 지키지 못해 실망시켰다면, 그 순간에는 바로 진심을 담아 사과해야 해. 그리고 말로 끝내지 말고 행동으로도 그 사과의 진정성을 보여줘야 한다.
- 미안하다고 하지 않는 게 좋은 순간
하지만 반대로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 게 더 좋은 상황도 있어. 아이들이 떼를 쓰거나 무리한 요구를 할 때, 부모가 난처한 상황을 빨리 벗어나고 싶어서 습관처럼 미안하다고 말하면, 아이들은 부모의 미안한 마음을 이용할 수 있거든. 또 아이가 명백히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 부모가 정당하게 꾸짖고 훈육한 후에도 미안하다고 말하면, 아이는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부모가 자신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오해할 수 있어.
예를 들어, 아이가 갖고 싶은 장난감을 부모가 사줄 수 없다고 해서 미안하다고 쉽게 말하면, 아이는 부모가 자기 뜻대로 해주지 않는 걸 부모의 잘못이라고 생각하게 될 거야. 그러면 결국 아이도, 부모도 모두가 힘들어지는 거지.

- 마지막으로, 아들들에게 하고 싶은 말
부모의 진심 어린 사과는 정말 소중한 거야. 하지만 미안하다는 말을 너무 쉽게 하거나, 반대로 너무 아껴서도 안 돼. 진심이 담긴 사과는 부모와 자식 사이를 더욱 단단하게 이어주는 신뢰의 표현이지만, 잘못된 순간에 남발하면 그 소중한 마음이 오히려 가치가 없어진다는 걸 기억했으면 좋겠다.
너희가 앞으로 부모가 될 때 지금 아빠가 한 말이 모두 정답은 아닐 거야. 하지만 이 이야기를 참고해서 너희 자녀들과 더 친밀하고 단단한 관계를 맺었으면 하는 바람이란다.
사랑하는 아들들아, 부모라는 이름 앞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아이의 마음을 먼저 헤아리는 것'이다. 내가 너무 늦게 깨달았듯, 너희는 이 지혜를 조금 더 일찍 알기를 바란다. 그리고 너희는 분명 나보다 더 좋은 부모가 될 거라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