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저녁, 거실에서 아들과 마주 앉았다. 아들의 눈엔 피로와 혼란, 그리고 막막함이 담겨 있었다. 힘겨운 20대, 앞날이 안개처럼 흐릿한 시기. 군대 입대를 앞둔 아들의 고민은 나의 젊은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아빠, 저는 지금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군대 가기 전에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맞는지도 모르겠어요."
잠시 나는 침묵했다. 나 역시 그의 나이에 똑같은 고민을 했으니까. 누군가 그때의 내게 이런 말을 해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는 천천히 말했다.
"아들아, 1년에 하나만 하면 된다."
아들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나는 미소 지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인생은 생각보다 길단다. 많은 사람들이 매일 성과를 내려고 조급해하지. 하지만 실제 인생을 돌아보면 하루, 한 주, 한 달보다는 '1년'이라는 시간이 더 의미가 있어. 네가 해야 할 건 거창한 목표가 아니라, 그냥 한 해가 지나면 내년의 계획을 세우는 것보다는 작년을 정리해 보는 것이 더 중요해."
나는 지난 삶을 떠올리며 말을 이었다.
"스물넷 살에 나는 군대를 제대했고, 스물여섯엔 혼자 여행을 떠났어. 서른에는 차를 샀고, 서른둘엔 외국어를 시작했지. 지금은 잊었지만 일본어 공부를 열심히 했던 해도 있었고. 아주 작은 일도, 거창한 성과가 아니어도 돼. 그저 '그 해엔 내가 이런 걸 했구나'라고 기억할 만한 한 가지면 충분해."
"뭔가 특별한 걸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아니야, 전혀 그렇지 않아. 아주 작은 것이라도 괜찮아. 예를 들어 '그 해엔 책 한 권을 읽었다', '처음으로 혼자 여행했다', 혹은 '잘 쉬었다' 같은 것도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야. 중요한 건 네가 1년을 되돌아봤을 때 기억나는 한 가지가 있느냐 없느냐지."
나는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고 다시 말했다.
"우리는 매일, 매주, 매달 무언가 성과를 내야 한다고 생각하지. 하지만 긴 인생에서 그건 지나친 부담이야. 나무가 하루하루 자라는 게 눈에 보이지 않지만, 1년 뒤엔 분명히 달라져 있는 것처럼, 너의 삶도 그럴 거야."
아들의 표정에 조금씩 안정감이 찾아들었다.
"아무것도 안 하면 안 된다. 그게 유일한 규칙이야. 그저 지금 하고 있는 무언가에 충실하면 돼. 나중에 돌아봤을 때 자연스럽게 기억날 테니까."
나는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너무 서두르지 마. 1년에 하나만 해도 너는 충분히 잘 살고 있는 거야. 인생은 생각보다 길고, 네가 하고 있는 그 작은 일이 결국 의미 있는 변화가 되어 있을 테니까."
그렇게 거실의 밤은 깊어졌다. 나는 속으로 조용히 생각했다.
'올해는 아들과 이런 이야기를 나눈해로 기억되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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